9일 공개된 ‘하청노동자 가족 실태조사’ 결과는 조선업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울산지역 하청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수치로 드러냈다. 이성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하청노동자 삶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확인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힘겹다”고 토로했다.
하청노동자 상당수는 부채를 안고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데도 전체 가구 중 4분의 3이 월소득 300만원 미만이었다. 가구 소득이 높지 않기에 지출 대부분은 기초생활에 집중됐다. 가구주와 배우자가 모두 경제활동을 하지만 정규직 경험은 극히 적었다. 실직과 잦은 이직은 직업 안정성을 침해했다. 이 지회장은 “5년째 진행 중인 조선업 구조조정이 하청노동자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며 “일자리를 잃고 임금과 퇴직금을 떼이고, 살아남아도 깎인 임금에 체불·체납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맞벌이에도 월평균 소득 300만원 이하
김종훈 민중당 의원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정책연구소 이음이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하청노동자 삶의 질 변화를 추적한 '하청노동자 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9일 공개했다. 하청노동자와 배우자 334명(328가구)이 설문에 참여했다. 전체 응답자 중 기혼자는 79.3%로 3인 가구(50.9%)가 가장 많았다. 2인 가구는 20.1%, 1인 가구와 4인 가구는 12.3%로 동일한 비율을 보였다.
하청노동자 가구 부채는 평균 4천823만원으로 조사됐다. 네 가구 중 세 가구가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계부채 규모는 4천만~7천만원 미만이 27.3%였다. 1천만~4천만원 미만은 19.0%를 차지했다. 1억원 이상도 14.6%였다. 가계부채 원인은 부동산 및 전월세 거래(36.8%)·생활비 부족(29.4%)·실직에 따른 급여중단(12.4%)·교육비(8%) 순이었다.
하청노동자 가구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200만~300만원이 42.5%로 가장 많았다. 100만~200만원이 33.3%, 300만~400만원이 13.7%였다. 월평균 가계 지출은 255만원으로 집계됐다. 가계 지출은 식료품비와 대출 및 이자 상환, 교육비 등 기초생활에 집중됐다.
하청노동자 가구의 주된 경제활동은 가구주에 의해 이뤄졌고, 배우자도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했다. 가구주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0시간이었는데, 최소 10시간에서 최대 100시간까지 일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배우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2시간으로, 최소 15시간에서 최대 80시간까지 일했다. 응답 가구원들은 평균 145개월을 하청업체에서 일했다. 가구주 혹은 배우자 가운데 “정규직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4명 중 1명(25.8%)에 불과했다.
1년에 한 번꼴 이직으로 경제적 어려움 호소
하청노동자들은 만연한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지난 3년간 실직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162명으로 절반에 육박했다. 평균 실직 기간은 10개월이었고, 최소 1개월에서 최대 38개월까지 실직을 경험했다. “지난 3년간 이직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168명이나 됐다. 평균 이직 횟수는 3회였다. 1년에 한 번꼴로 이직한 셈이다.
하청노동자 가구는 일·가정 양립이 어려웠다. 전체 응답가구 328곳 중 81곳(24.7%)이 1주일간 가족이 모여 식사한 적이 없었다. 1~3회 식사한 가구는 44.2%였다. 응답가구 중 46.6%는 지난 한 달 동안 가족과 여가활동을 함께하지 못했다.
고용불안은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된다. 하청노동자와 가족은 ‘가정 내 근심이나 갈등’을 초래한 주된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30.6%)과 “자녀교육 혹은 행동”(15.6%), “가구원의 취업 및 실업”(10.7%)을 꼽았다.
김종권 정책연구소 이음 선임연구원은 “응답자의 46%가 1년 후에도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며 “조선업 전 부문에서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노동자, 특히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크게 훼손하고 소득 불안정과 생활 불안정성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종훈 의원은 “2015년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조선업 구조조정의 최대 피해자는 하청노동자”라며 “가장 먼저, 가장 많은 숫자가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조정 이후 하청노동자와 가족의 생활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정책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은영 ley141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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