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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와 문재인 정부 좌충우돌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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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와 문재인 정부 좌충우돌 정책                

  • 한지원
  • 승인 2019.02.21 08:00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노동유연화는 일반적으로 일자리에 악영향을 끼친다. 전경련 회원사들이 자유시장경제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한 한국경제연구원은 2009년 연구보고서에서 “기업 차원에서 추구하는 어떤 노동유연화도 일자리를 늘리는 데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며칠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한 노동유연화(탄력근로제 확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합의안은 탄력근로제 실시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린 것만이 아니라 실시 요건을 대폭 완화한 것이 특징이다. 재계는 탄력근로 확대의 애로사항으로 도입 요건의 경직성을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탄력근로시간 계획을 일 단위에서 주 단위로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업무량 변동이 있을 경우 합의가 아니라 협의로 주 단위 탄력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재계는 지금까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실시로 탄력근로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합의로 탄력근로제 도입이 대폭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탄력근로제 확대가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아직까지 특별히 연구된 것이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 추정해 볼 수는 있다. 먼저 탄력근로제 확대로 주 52시간 상한제 효과가 사라진다고 가정해 보자. 극단적 가정이긴 하지만 재계가 주 52시간 반대급부로 탄력근로제 확대를 요구한 것이니만큼 완전히 비합리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2015년 분석에 따르면 주 52시간 실시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30만~60만개였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7년 연구에서 주 52시간 시행으로 14만~15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추정했다. 탄력근로제가 주 52시간제 효과를 상쇄한다면 이 정도의 일자리가 결과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독일 탄력근로제 효과로도 이번 합의의 영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독일 탄력근로제는 근로시간계정제도로 유명한데, 사용자의 탄력근로제와 노동자의 선택근로제가 시간계정으로 통합돼 관리되는 제도다.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분석하는 이 제도의 효과는 불황기 고용유지다. 2001년 독일 사회적기회연구소 설문조사에 의하면 제도를 시행 중인 기업 중 제조업의 68%, 전 산업의 38%가 고용유지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 탄력근로제는 고용증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 설문조사나 독일 노동시간제도를 연구한 다른 보고서에서도 결론이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탄력근로제가 노동시간단축 고용효과를 상쇄하는 부정적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탄력근로제는 독일식 고용유지도 아니다. 그야말로 고용회피가 목적이다. 최소한의 고용으로 업무량 폭증 시기에 대응하는 것이 기업들이 지금까지 밝힌 제도의 목적이었다. 경사노위에서도 노사 합의가 필요 없는 경우를 “업무량 폭증”이라고 꼭 집어 써 놓았다. 업무 폭증 시기에 100명이 필요해 지금까지 100명을 고용했다면, 이제 80명만 고용해 업무 폭증에 대응하겠다는 심보다.

이런 고용회피는 대기업에서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다. 현재 탄력근로제를 실시 중인 곳 대부분이 대기업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고용회피 기술은 선진국 중 단연 최고다. 선진국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기업(250인 이상) 고용비중은 40%가 넘지만 우리나라는 20%대에 불과하다. 이런 대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아웃소싱(업무 유연화) 기술에 이어 탄력근로라는 시간유연화 기술까지 얻는 셈이다. 대기업발 고용참사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할 수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평균적 노동강도를 높이는 대표적 정책이다. 업무량이 적은 시기, 즉 노동강도가 낮은 시기에 노동시간을 줄여, 업무량이 많은 시기, 즉 노동강도가 높은 시기에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업장 노동강도는 상향 평준화된다. 그런데 탄력근로제 같은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에서는 이런 노동강도 상승에 비해 임금이 상승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시간 유연화는 결과적으로 노동생산성 증가와 임금 상승 간의 격차를 넓히게 된다. 둘 사이 격차가 벌어지면 총소득 중 이윤으로 분배되는 비중이 커지고, 임금으로 분배되는 비중은 작아진다. 광범위한 노동시간 유연화를 시행한 독일에서 1990년대부터 임금분배율이 낮아지는 것이나, 20세기 후반 이와 유사한 노동유연화를 확대한 선진국들에서 분배율이 기업 이윤에 유리하게 변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더불어 기술혁신이 아니라 노동강도를 높여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제도변화는 고용에도 치명적 악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기술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그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줄여도, 그 기술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나타난다. 하지만 노동자를 쥐어짜는 노동생산성 증가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추가되지 않는다. 더욱이 불황기에는 기업 생산량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일자리 감소가 더 심하게 발생한다. 세계적으로 봐도 불황기에 진행된 노동유연화가 노동자에게 가혹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 시점에 노동유연화 카드를 꺼내 든 것일까? 매일 같이 일자리를 강조하면서, 더군다나 경기가 침체하는 마당에. 심지어 임금분배율을 높여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소득(임금)주도 성장론을 경제이론으로 삼는다는 문재인 정부가 말이다.

필자 생각에 현 정부 성격은 개혁·보수 이전에 인기영합주의다. 이쪽에서 최저임금 인상 주장이 커지면 인상하고 반대쪽에서 부작용 주장이 커지면 산입범위 확대로 무력화하고. 이쪽에서 정규직화 주장이 커지면 정규직화를 했다가, 반대쪽에서 반대론이 커지면 자회사로 어정쩡하게 봉합하고. 또 이쪽에서 노동시간단축을 주장하면 주 52시간 상한제를 시행했다가, 반대쪽에서 항의가 빗발치면 탄력근로제로 이를 지워 버리는.

이런 식이면 정부가 시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다. 들고일어나는 세력이, 뭐가 됐든 목소리 큰 세력이 이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래선 국민 모두가 실패하는 길로 갈 뿐이다.

부디 정부는 탄력근로제부터 방향을 다시 잡기 바란다. 일자리 위기라면서 탄력근로제를 실시하는 것은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정책이다. 정부는 목소리 크기가 아니라 정책효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봐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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