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사고가 알려지자 모두 안타까워했다. 아들이 죽은 이유를 밝혀 달라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반응은 차가웠다. 언론 보도에 "자식이 죽었는데 장례를 어떻게 미룰 수 있느냐" "유가족이 갑이 되는 세상" 같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자 "민간기업이 초토화될 수 있다"는 식의 보도가 잇따랐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연료·환경설비운전뿐 아니라 경상정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아들 김용균을 떠나 보낸 김미숙(51·사진)씨는 적지 않은 벽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씨는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들 김용균이 왜 죽었는지, 왜 힘든 싸움을 시작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수십 번 넘게 들었을 질문이다. 김씨는 "물어봐도 괜찮다"고 했다.
"용균이가 지핀 불씨, 비정규직이 없는 나라, 그것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계속 말하고 알릴 거예요."
이달 7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문을 왔다. 김씨는 이 대표에게 뜻밖의 질문을 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왜 도입(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대표는 "부작용이 없도록 논의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김씨가 생각하기에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아들 죽음은 무관하지 않다.
"실습을 하다 숨진 제주도 이민호군이 일한 곳이 탄력근로제를 시행했다고 하더군요. 일을 들쑥날쑥 시키면서 기본급만 줬답니다. 탄력근로제는 기업들이 최소한의 급여만 주겠다는 의도를 가진 제도인 거지요. 용균이도 돈을 우선시하는 기업에 의해 숨졌고요. 비정규직은 안 그래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데,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면 얼마 더 상황이 악화되겠습니까. 제도는 만들어지면 고치기 어렵다면서요. 만들기 전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기자들 앞에서 일부러 질문을 한 겁니다."
▲ 정기훈 기자 |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
지난 9일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 아들을 안치한 김씨는 하관식에 참석한 노동자·시민에게 "나라 곳곳에 있는 비정규직, 이들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싸워야 하니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이라서 대우 못 받고, 인간 이하 일회용으로 취급받는 사회를 누가 만들었나요. 기업들, 정치인들, 나라가 만들었죠. 서민들을 옥죄고 못살게 만들었습니다. 그 속에 우리 용균이도 있었고요. 용균이의 죽음은 용균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건 이후 비정규직들의 편지를 읽어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갖가지 사연을 들었어요. 너무 끔찍했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두 달 전에는 이런 사회인 줄 몰랐어요. 이제 알게 됐는데, 모르는 척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함께하고 싶어요."
김용균은 사회 곳곳에 있다. 지난 1년 새 간호사 2명이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습생 이민호군이 숨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들은 "나 때문에 죽었다"고 가슴을 친다. 두 간호사의 어머니들은 "딸의 아픔을 미리 이해하지 못했다"고, 이군의 아버지는 "가난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특성화고에 가지도 않았을 테고, 그런 곳에서 일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김미숙씨도 잘 아는 사연들이다. 얼굴을 감싸 쥐고 한동안 가만히 있던 그는 "저도 자책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 정기훈 기자 |
"산재 희생자·유가족 억울함 없도록 도울 것"
김씨는 경북 구미에 있는 전자회사에서 일했다. 8년 전 남편이 심장질환으로 쓰러진 뒤 가족 생계를 맡았다. 하루 12시간 주야 맞교대, 한 달에 한 번 쉬며 일했다. 1주일에 한 번은 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들 학교 보내고 남편 치료하려면 생계비를 벌어야 했다. 노후까지 생각하면 쉴 수가 없었다.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 계약직으로 일한 김용균씨는 입사 후 딱 한 번 구미 집에 왔다. 안부를 묻는 어머니에게 일이 힘들다고 했다.
"용균이가 힘들다고 했을 때 제가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할 수 있는 순간까지 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용균이는 경력을 쌓아 한국전력으로 가는 것이 목표였거든요. 그때 용균이가 어떤 곳에서 일하는지 파헤쳤더라면 거기서 꺼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일에만 몰두하고 살아서 아이에게 덜 신경 쓴 것은 아닐까, 살아온 모든 날의 모든 행동을 자책했습니다. 아이를 죽음에서 구하지 못했는데 내가 살아서 무슨 희망과 행복이 있을지 매일 생각합니다. 그 부모들도 저랑 똑같은 심정인 거지요."
김씨는 최근 회사를 그만뒀다. 아들이 무엇을 하고 싶었을지, 무엇을 원했을지만 생각하면서 사는 게 목표다.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은 비정규직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처우개선을 위해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가 정하는 비영리법인에 3년간 4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시민대책위는 이를 종잣돈 삼아 (가칭)김용균재단 설립을 모색하고 있다.
김용균씨 사고 발생 이후 한국서부발전·한국발전기술은 개인 과실로 사건이 발생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유가족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노조가 없었더라면 진실은 덮였을지 모른다. 김씨는 "회사 관계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시민대책위에 요청했다. 회사 회유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재단을 통해 억울한 죽음이 묻히지 않도록, 희생자와 유가족을 돕는 사업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싸우는 방법을 몰라서, 도움을 받지 못해서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 정기훈 기자 |
"먹고 자는 것도 미안 … 죽음 널리 알리겠다"
아들 장례가 끝난 뒤에도 유가족은 쉬지 않고 있다. 시민대책위와 함께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이날 인터뷰 후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의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이야기마당에 참석했다.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건강을 챙기셔야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손을 감싸 쥔 채 몸을 웅크린 김씨가 잠시 뒤 말을 이었다.
"용균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먹고 자는 것도 미안해요. 그런데 제가 몸이 있어야지 용균이 억울한 것도 풀고 진상규명해서 잘못한 사람들 처벌할 수 있잖아요. 만만치 않은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 제 몸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널리 알려야죠. 가만히 있으면 제가 무너질 것 같아요."
김용균씨 영결식과 장례식에 참석한 노동자·시민들은 "용균이와 어머니에게 큰 빚을 졌다"고 했다. 김용균씨로 인해 위험의 외주화 질주가 주춤거리게 됐기 때문이다. 원청에게 산업재해 면죄부를 준다고 비판을 받던 산업안전보건법도 전부개정됐다. 김씨는 함께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제가 뭐라고 다들 이렇게 잘해 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아들의 억울한 죽임을 밝히고, 같이 일한 동료들이 눈에 밟혀 그냥 둘 수 없어 나선 것뿐이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행동입니다. 그런 저를 지켜 주고 보듬어 주셨는데, 도리어 저에게 고맙다고 하십니다. 응원해 주신 분들, 힘 모아 주신 분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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